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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소년이 온다. 한강 장편소설 : 잊혀진, 혹은 잊지 못할..

오늘, 나는 2025. 3. 16. 01:37

2024년 10월,
한강 작가님이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을 받고, 
읽어봐야지 하다 드디어 읽게 된 첫번째 장편소설이에요.
 


1980년 5월 18일 아프고도 잔인한 광주 민주화운동,
그 열흘의 시간과 아직도 아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쓴 소설이에요. 
 
50년이 채 되지 않은 이 아픈 역사가 
누군가의 기억속엔 벌써 희미해지기도하고, 
누군가에게 영원한 낙인처럼 잊지 못하고 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저는 이 아픈 역사가 다시 되풀이 되지 않도록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보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성을 잃으면, 더이상 인간일 수 없다..
 

1장. 어린새

처음 누나들을 만났을 때 네가 한 말 중 사실이 아닌 게 있었다. ...(중략)...
마지막으로 정대를 본 건 동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였다. 모습만 본 게 아니라, 옆구리에 총을 맞는 것까지 봤다..(중략)... 다시 총소리가 귀를 찢었을 때, 모로 넘어진 정대를 뒤로 하고 너는 달렸다. 
p. 31 

지금 정미 누나가 갑자기 대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달라나가 무릎을 꿇을 텐데. 같이 도청 앞으로 가서 정대를 찾자고 할 텐데. 그러고도 네가 친구냐,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 정미누나가 너를 때리는 대로 얻어맞을 텐데. 얻어맞으면서 용서를 빌텐데.
p. 36

그때 쓰러진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너는 달아났을 거다. 형들이었다 해도, 아버지였다 해도, 엄마였다 해도 달아났을 거다.
용서하지 않을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p. 45

 
중학교 3학년 소년의 동호가 친구 정대와 함께 시위에 참여하다가 정대를 잃고, 그를 찾기 위해 전남도청에 찾아가고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돕습니다. 그 어린 동호의 시점이지만 2인칭으로 지칭하며 담담하게 처참한 상황을 확인하는 것은 생각보다 슬프네요.. 어린새라는 1장의 제목과도 너무 잘 어울리는 챕터. 어쩌면 동호는 용서를 빌 상대를 찾지 못해 아무것도,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용서할 수 없었던건 아닐까...
 

2장. 검은 숨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중략)...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플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p. 57~58

그때 난 네 손을 붙잡았는데.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중략)...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너를 힘껏 끌고 나가며 난 노래했는데. 목이 터져라고 애국가를 따라 불렀는데. 그들이 내 옆구리에 뜨거운 불덩이 같은 탄환을 박아넣기 전에. 저 얼굴들을 하얀 페인트로 지워버리기 전에.
p. 59

 
동호의 친구 정대는 이미 죽어 주검이 되었고, 그 혼은 자신과 또 다른 주검들을 바라보며 끊어지지 않게 기억을 이어가며 이야기를 합니다. 행복했던 기억, 죽어가면 아팠던 기억, 억울한 마음 등...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 위로 쌓이는 주검들을 바라보며 우리 군대가 총을 쐈다고 되뇌이는 정대의 모습에 무자비한 계엄군의 모습이 그려졌어요. ㅜㅡㅜ
 

3장. 일곱개의 뺨

눈발은 갓 빻은 쌀가루처럼 가볍고 부드러워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아름다울 수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오늘은 여섯번째 따귀를 잊어야 하는 날이지만, 이미 뺨은 아물어 거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내일이 되어 일곱번째 따귀를 잊을 필요는 없었다. 일곱번째 뺨을 잊을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p. 98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p. 99

 
당시 정부의 출판물 사전검열이 언급되면서 이미 상처로 얼룩진 그녀의 영혼은 앞으로 치유받을 수 없고, 그 고통의 기억을 잊을 수 없어 그녀의 삶이 장례식이 된 것 같은 챕터였다. 
 

4장. 쇠와 피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게 그겁니다
p. 114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그날 도청에 남은 어린 친구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p. 116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p. 119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깐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걸 증명한 거야.
p. 130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중략)...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p. 134~135

 
교대 대학생의 시점으로 교도소에서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더이상 살 수 없어 세상을 등지는 또는 하루 하루 치열하게 싸우며 치욕을 견뎌내는 마음으로 살아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저는 읽는 것 조차 너무 힘든 이 상황을 모두 겪어내고, 또 이미 영혼이 부서져 매일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이 드는 그런 챕터였어요. 
나는 그런 이들에게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5장. 밤의 눈동자

오래전 동호와 은숙이 조그만 소리로 나누던 대화를 당신은 기억한다. 왜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느냐고, 애국가는 왜 부르는 거냐고 동호는 물었다. 은숙이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그 여름으로부터 이십여년이 흘렀다. 씨를 말려야 할 빨갱이 연놈들. 그들이 욕설을 뱉으며 당신의 몸에 물을 끼얹던 순간을 등지고 여기까지 왔다.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 학살 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p. 173~174

눈앞에서 일렁이는 파르스름한 어둠을 향해 당신은 묻는다. 
내가 집으로 가라고 했다면, 김밥을 나눠 먹고 일어서면서 그렇게 당부했다면 너는 남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그래서 나에게 오곤 하는 거야?
왜 아직 내가 살아 있는지 물으려고. 
...(중략)...
아니, 
언니를 만나 할 말은 하나뿐이야.
허락된다면,
부디 허락된다면 
죽지마. 
죽지 말아요.
p. 176~177

 
영혼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상처받지 않았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영혼의 흉터는 사라지지 않으니깐 말이다. 
다만, 다시는 누군가의 죽음도 보고싶지 않은.. 간절하고 또 간절한 마음으로 나 또한 빌어본다. 죽지 말아요...
 

6장. 꽃 핀 쪽으로

가끔은 말이다이, 내가 뭣한다고 문간채에다 사람을 들였을까.. 생각한다이. 그까짓 사글세 몇푼 받겄다고.. 정대가 집으로 안들어왔으먼 네가 정대 찾는다고 그리 애를 쓰지 않았을 것인디.. 그러다가 느이 둘이 배드민턴 침스로 웃던 소리가 생각나먼, 죄 받제.. 죄 받아, 그람스로 고개를 흔들어야. 그라제, 재가 그 불쌍한 남매를 원망하먼 큰 죄를 받제. 
p. 187

이듬해 느이 아부지가 병을 얻어 약속을 못 지켰어야. 겨울에 임종할 때엔 야속했다이. 이 지옥에 나만 남겨놓고 가는 것이....(중략)... 그저 겨울이 지나간게 봄이 오드마는. 봄이 오먼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먼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
p. 190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속에 넣어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묻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쌓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중략)...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데로. 못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p. 192

 
518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당한 유가족의 얘기를 읽으면서, 눈물이 많이 났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수백번 수천번을 되돌리며 그 시간속을 헤매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어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동호는, 소년은 우리에게 옵니다.
많은 질문을, 우리에게 가지고..
 
이 책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으며, 동호에게 그 대답을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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